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니 달글리시 (문단 편집) === 리버풀로의 귀환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2px-Kenny_Dalglish_2009_Singapore.jpg]] 2009년 싱가포르 투어에서. 그 후 오랜시간 감독직에서 물러나 있던 달글리시는 2009년 리버풀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의 제의를 받아 리버풀 유소년 아카데미의 관리를 책임지게 됨과 동시에 리버풀 FC의 대사직을 겸하게 된다. 2010년 6월 베니테스가 리버풀의 부진에 책임을 지고 경질됨과 함께, 케니 달글리시는 자신이 팀을 맡을 것을 구단 수뇌부에 건의하지만 팬들의 바람과 본인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로이 호지슨]]이 부임하게 된다.[* 이때문에 이것을 결정한 퍼슬로우와 [[톰 힉스]]&조지 질레트는 두고두고 까인다. 애초에 이때 후보는 케니, 호지슨, 페예그리니였다. 제정신이 박혀있었다면 호지슨을 고르는 짓은 안해야 했다.그러나 호지슨 이후 부임한 케니의 성적도 별반 나을 것도 없었으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쓰고도 그 정도 성적이란 점에서 별 차이 없는 선택. 하지만 페예그리니가 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저 당시 팬층에서 제일 선호도가 높았던 후보가 페예그리니였다. 킹 케니는 후술되어 있듯이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있던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고 호지슨은 그동안 보여준 모습만 봐도 팀을 챔스권에 올려놓기에는 답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결국 우려대로 저 두 감독은 팀의 부활에 실패하고 리버풀은 챔스로 돌아가기 위해 [[브렌던 로저스]]의 부임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호지슨이 부임한 이후 리버풀의 성적이 좋아질 기미는커녕 더 추락하기에 이르자 팬들이 경기장에서 케니 달글리시를 연호하기 시작했고, 결국 리버풀에 [[존 헨리]] 구단주가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로이 호지슨이 해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